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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외고생의 글
관리자 , 등록일 : , 조회 : 2,575


제 입장부터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외고 폐지에 찬성하고, 또 외고를 자율고나 자사고, 특성화 고로 전환시키자는 입장에 대해 반대합니다.
 
외고에 다니는 학생이 외고 폐지를 주장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제가 외고 입시 준비할 때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분을 고등학생이 되어 고민해보면서 외고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기를 국제화 시대에 외국어는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서 외고는 통역관 키우는 장소가 아니라 국제적인 지도자를 양성하는 학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에는 심각한 모순이 존재합니다.
외국어 고등학교는 무슨 고등학교인가요?'특수 목적' 고등학교입니다.'외국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라고 주장하는 분들의 입장에 따르자면 '특수 목적'이란 '국제적 지도자 양성'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여기서 잠깐 한국의 법률을 살펴봅시다.
 
특수목적고등학교를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90조에서는 '특수 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로 정의한다.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와는 달리 특목고에서는 과학, 외국어, 농업, 해양, 예술, 체육 등 각 특수하고 전문적인 분야를 미리 학생들에게 습득시켜 그 분야의 전문가를 조기 양성을 하는 목표로 설립되었다.
 
묻겠습니다.일반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외국어는 목적입니까? 수단입니까?
목적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수단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외국어 고등학교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지게 됩니다.
몇몇 선생님들이 모여 "저희 학교는 외국어를 '목적'으로 간주하는 학생들을 받아들여 외국어 전문가를 양성  하겠습니다."하고 설립한 것이 외고라는 말입니다.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사실 우리나라에 외국어 고등학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외고라는 간판을 걸고, 마치 기업처럼 '외고'라는 이름을 브랜드로 활용하여 만든 입시전문학교는 있을지 몰라도 말입니다.
 
외국어고등학교 학생들이 외국어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만 간주한다면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와 어떤 점에서 설립취지가 달라집니까?외국어 수업시간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외고의 설립취지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요약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외고'는 현재 한국에서 '입시 명문' 또는 '사회적 성공의 발판', '국영수 문제 풀이 잘하는 애들 집합소'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습니다.외국어를 수단이라고 말함으로써 외국어고등학교가 설립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외고의 설립 취지에 관한 논의는 여기서 접어두고,
이제 외고의 존립을 옹호하는 분들께서 주장하시는 또 다른 명제 한가지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세상은 1%의 '인재'가 99%의 바보들을 먹여살리는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에 수준별 수업을 통한 수월성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시지요?
제가 역사 과목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잠시 역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알기로, 나라에서 학교라는 것을 세워 나라안의 모든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교육시키기 시작한 것은 굉장히 최근의 일입니다.학교를 세운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배웁니다.학교는 나라의 주인인 모든 사람이 사회를 만들어 나갈 때  조금 더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교육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이점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라는 곳은 모든 학생들이 모여, 성적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앞으로  우리는 우리의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가꾸어 나갈 수 있을까 고민해보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공교육 부실론자분들께서는 공교육이 부실하니까 외고가 부실한 공교육에 보완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공교육이 부실하다고 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공교육만 받아서는 애들 국영수 점수가 안나오더라 이겁니다.사실 그렇습니다.중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쉬운 설명을 10번해줘야 겨우 알아들을까 말까한 친구도 있고, 아무 생각없이 떠드는 친구도 있고, 공부하는 것 방해하는 친구도 있습니다.'저'라는 인간만을 기준축으로 놓고 보았을 때 앞서 언급했던 친구들은 걸림돌들에 불과합니다.제가 국영수 문제풀이 실력늘리는 것을 방해하는 존재들이니까요.그래서 어른들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공부잘하는 애들끼리 모여야 공부분위기가 좋아지고 너가 나중에 출세할 때 도움도 된다고요.사실 저는 그래서 외고를 왔습니다.그런데 과연 그게 '우리 사회'에 유익한 방향일까요?국영수 점수는 단지 학생이 학교 생활을 성실히 했느냐 아니냐의 잣대에 불과합니다.그것이 한국에서 사회 계급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학벌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강조되었을 뿐입니다.학벌사회라는 면은 여기서 다루는 부분이 아니므로 그냥 넘어가도록 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분명 수준별 수업, 그러니까 성적에 따라 학생들을 격리시킨 후 지식을 주입하게 되면 국영수 점수 산출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외고와 같은 학교는 굉장히 좋은 학교입니다.또 '좋은 학교'그러니까 국영수 점수 좋은 애들 다니는 학교에 다니게 되면 분명히 그 효과를 통해 개개인의 출세, 학벌의 획득에는 도움이 됩니다.그런데 그것이 과연 우리 세상을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토론하지
않습니다.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의 출세와 사회의 발전이 반비례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바보가 되었습니다.
 
대한제국이 일제에게 넘어갈 때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이완용을 기억하십니까?이완용은 당시 소위 말하는 1%의 인재였습니다.그런데 이완용이 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자신과 함께 살던 민족을 팔아먹었습니다.
한국 민중의 이익은 싸그리 짓밟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편하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오늘날 강조되는, 수월성의 틀에 갇힌 교육에서는 또 다른 이완용들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단 이완용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1%가 99%를 짓밟은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끼리 모이면 성적 좋은 아이들의 마음만 헤아리게 됩니다.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 아이들이 자라 사회에 지도자적인 위치를 차지했다고 가정해봅시다.그 아이들은 학생시절에 입시 명문 고등학교를 다니고, 국영수 문제 풀이를 잘해서 소위 '인재'라고 인정받고 자라왔습니다. 그 학생은 당연히,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소수의 아이들의 생각만 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그러한 아이들이 늘어날 수록 우리 사회에 얼마나큰 걸림돌이 될 지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그러한 점에서 저는 자율고와 자사고에도 반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얼마전 홈플러스 이승한 회장님께서 하셨던 말씀으로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장애인이 맛없는 빵을 만든다면, 중요한 것은 빵을 사주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빵을 만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홈플러스 지방점 출점 논란과 관련한 청중의 질문에 대한 답변 가운데 나온 것인데요.이 회장님의 주장이 옳고 그름을 떠나 이 회장님께서 평소에 가지셨던 인식을 단번에 살펴볼 수 있지 않습니까? 
장애인들은 똑같은 빵을 만들어도 제대로 못만드는 존재라는 인식....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시에 각자의 빵을 만들었습니다.누가 더 잘 만들었을까요?당연히 비장애인이 잘 만들었을거라고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여러분께서는 아마 장애인이 아닐 것이고, 장애인의 마음을 헤아려보지 않은 분일 겁니다.
 
만약 그 장애인분이 다리가 불편한 분이라면요?빵만드는데 있어 비장애인보다 못하리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그 장애인분께서 한쪽 팔만 불편하신 분이라면요?남은 한쪽 팔로 부단한 노력을 통해 맛있는 빵을 만들수도 있습니다.설사 두팔 다 없는 장애인 분이라도 발로 멋진 빵을 만들 수도 있고 눈이 안보이시는 장애인 분이라도 손에 스며드는 느낌을 통해 맛있는 빵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사회의 1%이신 이 회장님께 장애인 친구분 한명만 계셨더라도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었을까요?
한번이라도 장애인분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신 분의 입에서 이런 천박한 예시가 나올 수 있을까요?
1%와 99%를 격리시키는 교육 체계에서 진정한 1%는 나오지 않습니다.
 
99%를 얕보는 1%는 우리에게 필요 없습니다.
 
100%를 누구나 1%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게 수월성 교육입니다.
 
정해진 1%가 어딨습니까.1%는 상황마다 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인간이든 소중하고 또 매우 똑똑한 존재들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강요되는 1% 인재론'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선택은 우리가 우리를 위해 합니다.
 
우리가 1%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사회의 1%가 이회장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자라길 바라는 것인가요?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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